일단..
어리다, 권위가 없다, 철이 안 들었다로 얕잡아 보였을 때는.
상대방을 계몽하려는 노력을 그만 두는 것이 낫다.
새로 주입하는 것 보다 기존에 체득한 스키마를 깨부시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편견이나 잘못 알려진 진실이 수두룩하다.
진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 자존심이 상해서, 나에 대해서 잘못 이해할까봐.
구질구질 이어지는 지식 주입과 사상 교화의 세레머니를 펼치기에는 그냥 시간도 아깝고,
가능성도 희박할 뿐이고, 성공한다한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감정만 상하게 할 뿐이다.
탈권위의 시대는 아직도 요원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롤모델이 북유럽이 아니라 미국에서 오는 것이 현실.
박노자의 글을 읽어보면 탈권위에 대한 롤모델은 북유럽에서 가져오는 것이 맞다.
물론 GDP가 받쳐주고, 고용 노동자의 비율이 많고, 계급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어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미국?
미국은 권위에 대한 (합리적인)계량화가 잘 이루어진 국가일 뿐.
탈권위하고는 거리가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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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가장 진보적인 사람에게서도 나이, 권위에 대한 조선적 병폐를 느낄 때가 있다.
경력, 경험, 인생 내력에 관한 과신에서 진보적 독선이 태어난다.
대중이나 계급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겸양과 애정이 아니라 조소나 속단으로 변하면.
파시즘이나 진보나 한 끗차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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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경험, 인생 내력에 관한 과신에서 진보적 속단이 태어난다.
진정한 공평주의자, 실용주의자가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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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난 최승자 시, "개같은 가을이 中" 일부.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함장은 언제쯤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일단 롯또 당첨부터;;
그런데 봉놋방이 뭐냐.;;
머 이리 세상을 어렵게 사니